부치지 못한 편지/글. 권영의




 자로고 세상은 주둥이와 교만으로 살아가지 않는 일, 세월이 가고 사람이 사람을 떠나 아무도 없는 황량한 가슴에 모래바람 일 때서야 헛됨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을 하나의 도구로써 사용하게 된다면 그 또한 도구로써 사용될 수 있고, 끝내 부르던 외침은 허공중에 산산이 부서 질 일이다.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연들이 오고 가지만 정녕 어떤 일을 놓고 허위를 진실이라고 생각했으며 바라는 바 무엇이 되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헛된 욕망의 그늘에 잠들어 있는지 않은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사다.

 사람의 형상으로 세상에 태어났다고 모두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기에 앞 서 무릇 인간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린, 인간다운 모습으로 참답게 만들어 지는 것이다.

 해도 지면 어설픈 사연 하나 가슴에 안고 잠이 든다. 모두가 바라는 인생은 마치 꽃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에덴의 동산에서 살고 싶을 것이다.

 살아 남기위해 술수를 이용하거나 극성을 부리지 않아도·살 자는 살 만큼 아파했고 죽을 자는 죽을 만큼 아파했던 것 이 아니었을까……. 피고 지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일이라면 계절을 역행하는 죄만을 남긴 채 시들어 가는 일, 어질고 참 된 길에 묵묵히 순응하며 살아야 꽃이 피고 눈 내리는 날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 아니겠나.

 시련 속에 나무와 꽃들은 숙연해지며 더욱 커간다.

 인고의 세월 뒤에 놓여 진 것은 걸어가는 이의 발자국과 그가 떨어트린 그 무엇, 벌거벗고 걸어가는 길 일지라도 허상에 가려진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걸어가며 무심히 스쳐가는 풍경 속에 자신을 그려 넣는 일이다.

 헛된 욕심을 버리고 인간 본연의 순수함으로 걸어가는 길은 에덴의 동쪽에서 뜨는 태양과 같으며, 욕심과 교만한 자가 걸어가는 길은 에덴의 서쪽에서 지는 달그림자로 가득 찰 것이다.

 인간이기에 한 번 더 생각하는 평온한 길을 걸어가며 살아야 한다.

 빨리 먹는 음식은 채하게 되고 빨리 굽는 그릇은 공기가 차 허파에 바람 빠질 날 없는 것과 같은 형상이니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고개 숙여 숙연히 걷다 보면 행운이 아닌 필연으로 누군가가 원하는바 만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움직이며 생각 할 수 있는 것들은 자연(自然)의 일부가 되지 않는다.

 끝없이 나약한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인생길에 있어 기적을 원하기도 하고 때론, 기분 좋은 행운을 바라고 있기도 한다. 세상사 기적도 없고 우연도 없으며 행운도 없다. 스스로가 만들며 지나간 길에 피어 있는 국화꽃처럼 생각지 않았던 일들이 눈앞에 보여 지게 되는 찰나의 현상이나 경험일 것이다.

어제 낮선 편지 한통을 받았다. 그가 누군지 아는 바 하나도 없다.

 ‘무지가 이토록 죄스러운 줄 몰랐습니다. 관절 마디마디 물러앉는 아픔을 모른다오. 세상 부끄러움이 하늘을 덮는다 하여도 내 무지는 천지간에 넘치는 사무침이라 하루를 산다 한들 이리도 허망 할 수도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을 샅샅이 뒤져도 그 몹쓸 놈의 무지는 눈에 들지 않는데 어찌 좁디좁은 내 가슴에 웅크리고 있어 이토록 서러운 인생을 더듬어 살게 하는지…….여보게, 당신이 티끌만한 가르침을 준다면 두 손 받들어 무릎 굻고 조아려 배우리다. 무지의 그 끝이 정히 보이지 않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 어리석음을 한탄 하리라.’

 편지를 읽고 막연하게나마 느낌으로 전해지는 것이 있었다.

 나이는 중년을 넘겨 노년기에 접어들은 나이, 육체적으로 고달픈 상황, 그것들로 하여금 정신적으로 겪고 있을 생활의 불편함이 묻어 있는 글이다. 나보다 더 많은 세상풍파 역경 속에 한 송이 꽃이 되어 피어있는 사람에게 나는 또 하나를 배운다. 스스로를 인정하며 자신의 무지스러움까지 감추지 않고 말 할 수 있는 용기와 진실, 진즉, 인간이기에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며 표현이었다.

 내 자신이 그보다 더 미약한 존재는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답장을 써놓고 서랍 속에 넣었다.

 배우고 못 배운 것은 부끄러움도 아니며 자랑스럽지도 않은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입간판에 써놓은 글자들, 화장실 변기 앞에 붙여놓은 글들, 책속에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글들, 거리의 풍경 속에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그림들, 바람이 부니까 나뭇잎이 흔들린다는 아주 단순하면서 아름다운 풍경들, 개미가 집단생활을 하며 땅을 파고 푸른 잎을 옮기는 대업의 광경들…….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새겨 깨달음과 자식이 풍성히 열리는 나무를 가슴에 키워야 한다.

 살고 싶은 세상은 스스로가 만들며 살아야 한다. 어디엔가 슬며시 묻어 내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두기엔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며 교활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야말로 덤으로 살아가지 않는 삶은 인생의 참 의미가 있고 살아 있는 기쁨이 충만 할 것 같다.

 이미 만들어져 있어 그곳에 내가 존재하기가 부끄럽다. 에덴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동경 속에 있다면 도심의 회색빛 거리에 우리 함께 붓질을 하고 색칠을 하며 살아가 보았으면……. 그곳은 평화롭고 행복하기가 그지없을 것 같다.

 

                                 錦袍 권영의 <<에세이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