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도 이슬에 젖어야 새벽이 오듯

 

  무더운 날씨가 연 일 이어지는 삼복의 칠월이다.  
 한동안 계속되는 열대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은 벌써 삼복더위 때 혀 길게 내밀며 가쁜 숨을 쉬며 길을 걷는 견공이나 같다고나 해야 할 것 같다. 어느 누군가 라디오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오늘 같이 더운 날은, 에어컨 없이도 일에만 몰두하면 더운 줄 모르고 하루를 보냅니다.” 이런 말은 여름철이면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다.

 세상 어느 팔자 좋은 사람이 하는 말 인줄은 모르겠으나, 지 아무리 나무그늘 밑에서 자리 펴 놓고 남의 손금이나 봐주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색이 직장이고 일을 해야 하는 작업의 현장에서 일에 몰두를 하면 더운 줄 모르겠다니 아마도 그 사람은, 머나 먼 남극이나 북극 해 쯤 에서 방송국으로 편지를 보냈을 것 같다. 전파나 전해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여름이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 펑 펑 나오는 사무실에 앉아 근무를 하다가 퇴근을 하는 공무원들이나, 산하기관 등 에서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인구에 비해 공직자들의 수가 상대적 비대한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3D현장에서 하루의 생계를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추측컨대 근로 인구의 절반이상은 되지 않을까. 육체적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몸을 움직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 나르고, 또는 태양빛을 그대로 쬐여가며 실외에서나 아니면, 열기가 있는 장소에서 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아마도 한 두 시간만 일을 하게 되면 속옷까지 펑하니 젖어 축축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배려“와 ‘이해”라는 말은 입버릇처럼 무척 잘 하고 있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오래 전 인류가 만들어지고 사람이라는 동물이 지구상에 존재하면서 부터 자연히 습득한 생존의 방식이며, 자기중심적 사고와 판단에서 나오는 불변의 원칙 같은 것은 아닐까. 사람을 비롯한 동물과 식물들, 심지어 곤충들과 미생물까지도 살아가면서 자연히 터득을 하며 살아가는 것들이 있다.  그 누가 알려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연히 알게 되며 터득 할 수 있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더운 날씨가 되면 에너지 소비를 효율적으로 하려 한다. 또한,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의 저항력이 약해짐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하여 스스로가 자기 방어적 행동의 일환으로 스트레스의 생성을 억재하며 그것으로 부터 회피하려 한다. 세상은 그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혼자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살수 없다. 또한 혼자만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기에도 더 어려운 것이 세상이다.

 나는 지하철 역 부근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밤거리가 그다지 좋은 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변에 유흥업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식당 몇 개 정도 있는 것은 사람 사는 동네엔 흔히 있는 풍경들이 아닌가. 새벽까지 방황 하는 젊은 청년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함인지 비명인지 잠자는 새벽을 깨우는 여학생들과 아가씨들의 살 갗 돋는 음성들이 심심치 않게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아마도 젊음을 포기한 사람들이던지 아니면, 한 때 젊은 날의 씻을 수 없는 추억을 애써 만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일 것 같다.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남을 의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자면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얼마 전, 동네 마트에서는 개업 2주년 행사를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강행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주택가에서 말이다.

 일 년에 몇 번씩은 있는 일이지만, 아무리 자신의 영업장 앞이라고 해도 도로는 공공의 편의 시설물이며 연립과 빌라 등 다세대 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주거지역이다.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아스팔트길은 들썩이고, 주택가의 벽은 박자에 맞춰 진동을 하고 있었다. 각설이패의 북소리, 행사 도우미의 노래 메들리, 구경꾼도 별로 없는 이 거리의 스트레스는 한 여름 달구어진 길가에 가득하였다.

 그것은 방황하는 시체였다. 지금까지 몇 번 정도는 다소 지나치다 하더라도 생계의 한 방법으로 취부를 해서 그냥 넘어 갔었으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밀려 든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 하나가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괴로움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으로써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소리는, 저녁을 지나 밤으로의 여행을 계속하려 하고 있었다.

 8시 30분 쯤 이었다. 이 시간 정도면 가정들도 하루의 피곤과 여정에서 내일을 위한 휴식이 절실히 원하는 시간이 아니던가. 몸이 아픈 어느 집 노인이 무더위와 힘겹게 보내고 있던지, 밤일을 마치고 무거운 몸 달래가며 쉬고 있을 사람, 어느 집 갓난아기가 경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 역시도 하루가 일 년 같은 느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바로 상가건물 지하실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이봐요, 주택가에서 정도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동네에서 인심 잃지 말고 나가서 스피커 소리 좀 줄여달라고 해요!” 이 말을 듣던 매점 두 명중 젊은 여자는 묵묵히 계산대에 서서 물건 값을 계산을 하고 있었고, 맞은 편 남자 점원에게 제 차 말을 하였을 때에는 알았다고 대답을 하였다. “조금 있다가도 여전하면 알아서 하세요.” 나오면서 이렇게라도 한 마디 더 던지며 확인을 받아야만 했다. 집으로 들어와 상황을 듣고 있었다.

 마트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대형 스피커를 탔다. 행사를 끝내기로 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멘트 이후에도 이어지는 노래 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요번엔 행사장 마트 사장에게 직접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한 동안 계속 되다가 거리는 평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 얼마나 평화로운 일인가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중하며 서로의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단 한 번 쯤 깊이 생각을 했었다면, 그 많은 동네 사람들이 받을 한 여름의 도깨비 스트레스는 애당초부터 없었을 것이 아니었던가.

 밤도 이슬에 젖어야 새벽이 온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밤, 인간의 때 묻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촉촉이 젖어 들다가 아침을 맞이하게 하면 어떨까.



     글. 錦袍 권영의 <<새벽별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