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풍금을 치는 아침




겨울비가 내리기위해 밤 새 짙푸른 하늘엔 별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길을 나서며 가끔 그랬던 것처럼 주택가 모퉁이 길을 돌아 자판기커피를 마시며 지금껏 살아오면서 근래에 느끼지 못했던 작은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내 마음속의 풍금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얼마나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는 삶이었던가! 회색빛 콘크리트건물들이 답답한 숨소리까지도 목을 조이듯이 앞을 가리고 있고, 잠시라도 쉬지 못하는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귓전이 멍 해 지도록 소리를 내며 질주를 하고 있지 않은가.....

주변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생활과 개인적인 성향, 생활방식과 인격적 형성과 완성, 내가 바라본 아파트 경비실에선 하나도 바쁜 일 없는 듯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 아파트 가정집에서 역겨운 기름타는 냄새와 더불어 연기인 듯 아닌 듯이 나오는 기름보일러의 매연,  그것을 토해내기 위하여 저 집 보일러실에선 윙 윙 소리를 내며 보일러의 모터는 돌아가고 있을 일이다.

어쩌면, 경비실의 연탄난로 위에서는 작은 주전자가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며 밤을 새 운 어느 집 가장의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혀 바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일,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그 어떤 이의 가슴에 미소 짓게 하는 일,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얼마나 흐뭇하며 감동적인 일이 아니던가!


오랜만에 보는 아주 평범한 연탄난로의 연통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로 하여금, 오랫동안 잊고 살아 왔던 내 마음의 풍금을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치고 있는 것이다. 기계화에 물들지 않고, 디지털문명에 찌들어 있지 않은 그 시절은 아마도, 지금 이 문명세상보다는 더욱 소박한 인간 냄새가 묻어나는 정겨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 행여 힘겹게 돌아가는 저 모터와 같은 것이 아닐까.

피고 지지 않는 저 나무들처럼 산다는 것이 그리 쉬웠다면 삶의 의미와 가치가 어디 있겠는가. 새벽이 거치고 아침이 밝아 올 때 풀잎에 맺힌 이슬 같은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인생은 바람을 따라 가지 않으려 하는데 바람은 사람을 그 어디론가 이끌고 가려 세찬 매질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때론, 떨어지지 않으려 풀잎의 손을 세차게 잡아 보지만 바람 부는 날이면 풀잎의 냉정한 눈빛은 봄바람에도 흔들린다. 슬퍼하지 말자고, 외로움에 떨지 말자고, 우리 가는 초라한 인생길에 손잡고 가는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고 우리 서로 서러워하지 말기로 하자.


추억은 먼 뒤안길로 떠나가고 다가오는 것은 회심에 젖어든 상념들이겠지만 봄비가 내리는 날엔 아주 오래된 숲속으로 돌아가 나무도 나도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오래전 처음 나와 함께 거닐던 그 가 누군지 묻고 돌아오고 싶어 하겠지. 오늘은 아무런 이유 없이 너와 함께 찬비를 맞고 싶은 날이야. 지금 이 소중한  날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은 바로 너이니까. 먼 훗날 겨울 찬바람이 불어와도 맞잡은 우리 두 손 겨울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는 거야.




                      글.錦袍  권영의 <새벽별에세이> -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