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인생/권영의



 겨울은 내 가슴에도 찾아와 외로이 스며드는가.  어찌나 춥던지 새 떠난 둥지도 떨고 있었다. 
 그 해 겨울은 강원도 설원위에 새겨진 경운기 발자국 보다 더 추웠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가슴은 사시나무 떨리듯이 웅크린 채로 겨울의 초
입 문을 열고 들어 와 있었다. 
 삶을 살면 살아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잃어 가야 하는데 몸과 마음에 붙은 외로움의 딱지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두껍게만 덧칠해 가고 있다.
 내 가슴에 작은 오두막 지어 놓고 나만이 걸어온 책장을 가만히 넘긴다. 
 쇄약해진 계절에도 겨울이 찾아오면 가슴에 남아 있는 꽃씨가 이듬해 봄이 찾아오게 되더라도 어쩌면 꽃을 피울 수 없다는 생각은 왜 여서 일
까? 내 나이 40의 중반에 와 있다.  내가 세상을 위하여 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래도 세상에 숨 쉬고 있는 것들은 제각기 할 일들이 많
은 것이다. 
 내가 쓰러지는 것은 하나도 겁나지 않으나, 내 모든 것을 몽땅 바쳐가며 살아온 지난 과거들이 부질없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고 이제 지나
온 세월의 절반만 기다리면 그 무엇이라도 되어 내 앞에 그 모습을 보이게 될 텐데 홀로 걷다 상처 나고 바람 부는 날에 찢겨진 가슴만 잠 못 드
는 밤에 스스로 꿰맸다. 
 그래도 감사하게 생각을 하며 눈물 훔쳐가며 살아온 그 많은 날 나의 초상들, 길 위에 어떻게 새겨져 있을까... 
 고마운 이들이 없지 않아 있었고 나 이렇게 살아 왔어도 후회 하나 남지 않거늘, 그래서 그런지 육신은 어딜 가고 한 낮에 영혼만 외로이 겨울 
하늘 나뭇가지에 앉아 피리를 부나. 손에서 놓지 못하는 피리는 누굴 위하여 부는 피리였는가... 
 방 안에 38w 삼파장 전등이 방바닥에 떨어져 개졌다. 밤새껏 램프를 찾다가 원통형 형광등으로 그 빈자리를 대신하였다. 
 다음 날 저녁, 옆 동네에서 폐지를 주워 고물상으로 가는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장갑도 끼지 않고 추워 보였다. 폐지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한동안 주변을 함께 걷다가 내리막길이 오자 근처 철물점을 찾
았다. 
 시장 근처라서 모두가 음식점들로 가득 했다. 시기상으로도 지금은 연 초이고 설 이 가깝게 있어서 음식점엔 가족단위 손님들이 많이 보였다.
 앞서 걷다가 마트로 들어갔다. 250원 짜리 목장갑 한 켤레를 샀다.  할머니가 사라질까봐 거스름돈을 받지도 않고 허겁지겁 나가서 끼워 드렸
다. 
 우리 집 방 안 전등도 봄이 오고 물소리가 계곡사이에서부터 시작하여 얼었던 내 가슴에 울림이 되면 다시 또 전 보다 더 밝은 삼파장 램프로 
끼워 넣을 거다. 
 세상위에 숨 쉬고 있는 어느 하나 존엄하지 않고 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 무엇으로 태어나 서로가 생김새와 색깔이 달라 서로가 맞지 않는 
생각 속에 살고 있지만 그 무엇이라도 이 땅 위를 빌려 살아가지 않는 것은 없다. 또한, 떠나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도 없다. 
 옛 말이 이르기를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동물이 세상을 살면서 의, 식, 주 3가지 만 으로는 살 수가 없는 세상이 현대가 낳은 산물이며 문화와 문명이 삶의 가치를 높이는데 정신적 버
팀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모든 것을 배제하고도 그 중 식(食)을 놓고 볼 때, 먹고 사는 것을 하나의 덩어리로 본다. 그러나 나의 일생은 "먹음과 삶" 그 두 가지 분명한 
구분이 되어 있었다. 
 어느 한 가지에 자신을 올인 하게 되고 그렇다 보면 자신을 때론 망각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여염집 여인들이 여자로서 또는 엄마로서 겪는 도리와 책임, 한 집의 가장이며 아버지로서, 남자로서 겪는 도리와 책임을 하나의 몸과 하나의
 성을 빌려 세상에 태어나 겪는 일들은 나 죽었다고 생각하며 사는데 까지 살면 되는데 그로인해 주변 가족들이 옭아매는 올가미는 한 가정의 
삶 그 자체를 무너트리고 사람으로서 극복하기 힘든 고뇌와 긴 세월의 기다림 속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외부에 들어나지 않고 설령 들어난다 해도 그것은 죄가 되지 않는 일 이었다. 올가미 속에 울고 있는 새만 괴로움과 고통에 신음하며 날기 위
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하늘이 내게 주어진 업보의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그 어느 누구의 손과 힘을 빌리지 않고 내게 주어진 몫은 끝까지 살아남아야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강박관념은 젊은 나이의 한 남자가 가질 수 있는 꿈을 포기 시켰으며, 오로지 살기 위해서 먹어야 했고 먹기 위하여 쇄약해진 몸뚱이와
 지친 가슴은 전전긍긍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천륜을 위해 살아온 그것이 나를 더욱 올가미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 되어 버렸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이것이다.
 가슴조이며 자식만을 위해 거리에서 눈물 흘렸던 젊은 날의 내 인생, 돌이켜 한 세상을 그 때 그 시절로 돌아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식에게 남겨줄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글을 쓰게 되었다.
 글에서 아버지의 삶과, 삶 속에서 20대 아버지가 걸은 처음의 발걸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역경과 고뇌와 삶
을 위한 의지의 절규까지 남겨 놓고 싶었다.  
 글로서 남기고 싶은 것들이 어디 한 두 가지 뿐 이겠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만 멍해지는 일들, 생각한다고 치유되는 일이 아님을 안다.
 자신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족이 자신을 망칠수도 있으며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생각하는 부모, 사상과 감성적으로 풍부해야 자신에게 해가 되
지 않는 다는 것을 뼈저리도록 느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가슴과 몸통, 팔 다리는 없고 머리만 있는 형상이라 천만사가 인생인 세상살이 추
락하는 것엔 날개를 없게 만든다.
 자신의 건강이 무너지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자신 따윈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음에 체념하여 버리게 된다. 다른 것
은 생각 할 여유도 없이 그만을 위해서 살아온 난, 지금보다 더 외로운 고독과의 삶이 있기에 가슴이 받아 들여야 하는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지
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올인 한 것들이 덩그러니 자신만 남겨놓고 날아갔을 때, 치유 될 수 없는 자신 앞에 무력해 지는 것이 동물적 본능이며 나약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죄가 된다.
 두 아이들은 제법 컸다고 우리가 그만 할 때 감히 생각도 안 하는 생각과 관념, 사고방식을 가지고 산다. 부모에게 받은 좋지 못한 유전자적 사
상들과 형질들을 빼놓고라도 내가 더 많이 힘들어 아파도, 그로인해 내가 쓰러져도 아이들에겐 되 물림 되게 하지 말아야한다.
 품 안에 그들이 있을 때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만들어 지며 공동체가 바탕이 되어 세상을 살아간다. 영원함이 존재하지 않듯이 나를 위로한
다.  그래, “둥지를 떠나야 날 수 있다”, “그래야 비로써 새가 되는 것이다.” 라고 말이다.  순서도 없이 찾아온 그 연습이 엄동설한 꿈속에서도
 나를 서럽게 울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같이 나팔을 불다 잠이 들고, 꽃잎에 새벽이슬이 맺힌 것처럼 아침이면 늘 찌뿌듯한 몸에 마음까지 지쳐 천근만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울어대도 소리는 그리 많지도 크지도 않다. 너무나 미약한 소리인지 듣는 이 또한 아무도 없다. 나팔꽃이 그래서 이슬이 많이 맺히는 것 일까.
매연과 소음, 먼지까지 온통 뒤집어쓰고도 가로수 띄엄띄엄 화단에 심어져 있는 그 꽃도 꽃인데.... 근래에 들어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졌다. 따뜻한 밥에 뜨거운 국물, 그가 그 누구라도 정 든 이가 차려주는 밥상, 그토록 그리워지는데 찌개 속 에 들어간 두부처럼 물컹거리며 풀어지고 흩어져 있는 것이 나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