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고도를 기다리며

                  엄원용

밤 11시 55분이다.
서울역 대합실
메마르고 황량한 그 차가운 대합실 광장 한 구석
거기에 의자가 하나 고독하게 놓여 있다.
그 위에 한 사내가 길게 누워 있고
그 옆에 또 한 사내가
헌 신문지 조각을 들고 구직란을 읽고 있다.
다 거짓말이야. 월수 200만원이라고?
그걸 믿어? 모두 사기꾼들이 하는 소리야.
그러나 저러나 오늘도 또 안 오는 모양이지?
벌써 12시야, 올 리가 있겠어?
그래도 기다려 보아야지. 그럼, 기다려 보아야지
그런데 뭘 하면서 기다리지?
밤은 너무 춥고 지루해. 기다리는 즐거움이 없어.
그러면 지루한 시간을 죽이자. 어릿광대가 되어
고독하게, 황량하게 쉴 새 없이 지껄여 보는 거야.
앉았다, 일어났다, 질문하고, 욕하고,
되받고, 장난하고, 춤을 추는 것은 어때?
좋아, 그게 좋겠다. 그러다 보면 그놈의 고도는 오겠지
와서는 우리를 보고 웃어죽겠다고 하겠지
사실 이 고독한 기다림이란 참 우스운 짓이야.
그래도 어쩌겠나? 오늘 오지 않으면 내일 또 기다려야지.
빌어먹을 그놈의 소년은 오늘 못 오고 내일 온다고,
또 내일이면 또 내일이라 그렇게 말하고 가겠지
아마 3막이 시작되어도 고도는 또 소년을 보낼 거야.
또 다음날 온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갈 거야.
우리는 다 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춥고 메마른 대합실 광장 한 구석으로는
우리같이 서러운 이들에게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
그래도 기다림에 너무 익숙해진 우리는
기다림에 지칠 대로 지쳤으면서도 참으로 어리석게도
내일도 또 내일도 그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린다.
2011.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