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원용

 

허수아비의 옷이 벗겨졌다.

들판 가운데 십자가만 덩그렇게 남아

홀로 고독하게 서 있다.

 

가시 면류관 대신

구겨진 밀짚모자에

찢겨진 옷을 걸치고도 불평 하나 없다.

항상 두 팔을 벌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예수 그리스도 모양으로 고개를 숙이고

하루 종일 그 자리에 서서

오직 인간을 위한

인간의 생명만을 생각하고 있다.

온갖 새들이 어깨 위에 앉아서

조잘대며 조롱해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어지러운 새들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침묵하고 서 있다.

 

허수아비는 참 바보다.

 

                                                                                201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