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원용
나무와 나무, 작은 잡목들 사이에서
홀로 우뚝 서서
한 때는 푸른 빛깔로
무성하게 온 몸을 장식하던
저 늙은 떡갈나무가
어느 때부턴가
그 눈부시던 욕망의 빛깔들을
바람에 하나 하나 떨쳐버리고
차가운 겨울 밤안개 속에서
죽은 듯 산 듯
조용히 세월을 맡기고 서 있었다.
그 때 비로소 나는 보았다.
오랜 세월 견디고 나서
온갖 풍상에 다 드러낸
全裸의 부끄러운 몸짓으로
의연히 서 있는 저 원시의 古木.
그것은 하늘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세월을 기다리고 계신 늙으신 아버지였다.
이제는
숲속 여러 雜木들 사이에서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숙연히 침묵하고 있는
저 고독한 늙은 떡갈나무.
2011.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