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원용  //

봉숭아 꽃물을 들인 적이 있었지요.

어느 여름밤 시린 달빛 아래 붉은 봉숭아 꽃 한 잎 따서 푸른 이파리를 달빛으로 칭칭 감았지요.

짓궂은 구름은 가끔 으스름 달빛으로 가리고, 그러면 저 달빛 붉은 연정으로 곱게 물들게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지요.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꽃물 한 번 들여 본 적이 없었지만, 사랑이 이렇게 부끄러운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붉은 봉숭아꽃 물들이는 일일 것 만 같고, 또 그렇게 달빛으로 푸른 이파리를 칭칭 감는 것이 사랑인 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