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원용

 

늦가을 공원 사시나무 숲속을 거닐어 보았다.

수피樹皮가 은백색인 수십 그루의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어찌 보면 세월을 다 이기고 머리 희끗희끗 날리는 노인들이 꿋꿋이 서 있는 것도 같고,

재질이 무르고 가벼워 가구재나, 성냥개비, 젓가락 등에 쓰인다는데, 나이 들어 가벼워지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름답게 물들인 낙엽처럼 한 때 곱게 물들었다가 지상에 떨어져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리라.

참으로 정갈한 은백색, 그 위에 노랗게 물들인 낙엽을 보면서 인생도 이렇게 아름답게 저물어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