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원용

 

내가 17살 때 같이 자주 영화를 보던 남자.

밤이면 동네 언덕에 올라앉아 별을 세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주던 남자.

어느새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어디서 살고 있는지, 잘 살고는 있는지

가끔 생각이 나고,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남자.

어디서 알아냈는지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얼굴에 온갖 그림을 그리고, 길을 걸어가는데

쇼 윈도우에 웬 중년 여자 하나가 걸어가고 있었다.

얼굴에는 선도 다 무너지고, 잔주름이 자글자글 진

두 아이의 엄마가 자기를 잊은 채 걸어가고 있었다.

얼굴만이라도 몰래 보고 오려고 숨어서 전화했더니

아 글쎄, 너무 아닌 남자가 전화를 받는 거 있지.

나, 그냥 17세의 소녀로 남아 있을 걸-

아, 그냥 그 남자로만 남아 있게 할 걸-

무엇이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는지

행여 누가 볼세라 얼른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이게 다 세월 때문이라고-.

쓸쓸히 그 놈의 세월만을 탓하면서-.

 

JTBC ‘청담동 살아요’ 107회를 보고 나서 쓴 글임